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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참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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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의 유엔참전국 벨기에·룩셈부르크
작성자 유○평 작성일 2023-03-02 조회수 560

 



2023년 3월의 유엔참전국 벨기에·룩셈부르크

선정 근거 : 최초 전투 1951년 3월 6일(벨기에), 1951년 3월 13일(룩셈부르크)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유엔참전국 22개국에서 195만7733명이 참전했습니다. 참전용사들의 용기와 활약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하였습니다. 유엔평화기념관은 뉴스1과 함께  2023년 정전 협정 70주년을 앞두고 ‘이달의 유엔참전국’ 연재를 통해 유엔참전국과 참전용사의 활약상을 조명하고 기억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는 제1,2차 세계대전을 치루고 난 뒤 1949년 중립을 포기하고 NATO에 가입하였습니다. 그에 따라 6·25전쟁 발발 당시 양국은 미국의 국방력에 의존하는 상황이었고 파병의 여력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유엔과 미국의 참전요청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는 협의를 통해 722일 지원병 모집하고 통합된 대대를 편성하여 파병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당시 유엔군사령부는 작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가능한 참전국 별 1000명 이상의 병력 파견을 요청하였던 상황에서 총 인구수 20여만 명에 불과했던 룩셈부르크에서는 병력 파견이 곤란했음에도 벨기에와 협의하여 벨기에대대에 포함되어 전쟁에 참전하겠다는 의지를 유엔에 강력하게 피력하였고 유엔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파병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벨기에는 2000여명의 지원자 가운데 700명을 엄선하여 제1벨기에대대(The 1st Belgium Battalion)를 창설하게 되고, 룩셈부르크 정부는 48명의 참전 병력을 편성하여 벨기에 대대에 A중대에 합류시켰습니다. 벨기에·룩셈부르크 대대는 3개의 소총중대, 1개의 화기중대(기관총소대, 박격포소대, 대전차소대 포함), 대대본부 및 본부중대 등으로 편성을 끝내자마자 한국의 산악지형과 유사한 곳에서 1개월간의 훈련을 실시한 후 황태자로부터 부대기를 수여 받게 되었습니다. 19501218일 앙베르 항에서 영국 수송선 카미나를 타고 1951131일 부산항에 상륙한 대대는 동래로 이동하여 유엔군 수용소에서 6주간의 현지적응훈련과 병참선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정비를 실시하였고 이후 미 제3사단에 배속되어 본격적으로 전쟁에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참전 초기 왜관지구에서 유격전을 실시하고 한강으로 이동한 벨기에·룩셈부르크 대대는 전문적인 전술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고 금굴산 전투, 학당리 전투, 김화 잣골 전투 등에서 대대의 뛰어난 전투력을 증명하였습니다.

 

참전 기간 동안 벨기에·룩셈부르크 대대는 총 3598의 인원을 한국으로 보냈습니다. 보병대대 1개 규모의 병력인원은 600 ~ 900명 선까지 유지되었습니다. 대대는 여러 전투와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101명이 전사하고 349명이 부상당하는 등 치열한 전투 가운데 자신들의 전투력과 헌신을 입증했습니다. 그리고 전투력과 헌신은 미국대통령과 한국대통령, 8군사령관 등에서 부대 표창 및 무공훈장을 수여함으로써 인정했습니다.

 

1·2차 세계대전 속에서 집단안보의 소중함을 체득했던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에게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국제 사회의 질서를 확립하고 한반도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참전이라는 결정을 했다는 것은 결의와 신념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