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의 유엔참전국 독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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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유○평 | 작성일 | 2023-05-02 | 조회수 | 506 |
선정 근거 : 의료개시일 1954. 5. 17.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유엔참전국 22개국에서 195만7733명이 참전했습니다. 참전용사들의 용기와 활약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하였습니다. 유엔평화기념관은 뉴스1과 함께 2023년 정전 협정 70주년을 기념하며 ‘이달의 유엔참전국’ 연재를 통해 유엔참전국과 참전용사의 활약상을 조명하고 기억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독일은 1950년을 전후하여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국가로서 재탄생하기 위해 외교적 목표를 가지고 외교활동을 추진하였고 이러한 노력은 6·25 전쟁에서 의료지원국으로 한국을 돕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독일 정부는 6·25전쟁에서 의료지원을 하기 위해 의료단 편성 계획을 세우고 독일 적십자사를 통해 스위스 국제적십자연맹에 야전병원 정보를 요청했습니다. 이 정보 요청의 이유는 노르웨이, 이탈리아 등의 파견 규모를 참고하여 의료단을 편성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과정 끝에 독일 정부는 1953년 4월 야전병원 파견을 미국과 유엔에 제의하고 이듬해인 1954년 4월 부산에 병원을 설립하여 운영하였습니다.. 1954년 부산 서대신동의 부산여고를 인수한 날이 4월 24일이었고 그때부터 병원을 설립하고 개보수를 실시하였습니다. 20여일이 지난 이후 실제 환자를 받아 진료를 시작한 날은 1954년 5월 17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에서의 첫 인도적인 활동으로 의료지원으로 시작한 독일 의료단은 처음에 의사 12명(외과 5명, 내과 3명, 치과 1명, 방사선과 1명, 산부인과 2명 등 12명), 간호사 25명을 비롯해 모두 약 80여 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병원장 후베르는 산부인과 전문가이고 중국에서도 진료한 경험이 있는 의사였으며 이 밖에도 외과과장을 비롯해 과장급 의사들은 독일에서도 대학교수에 버금가는 실력자들이었고 의료장비에 있어서도 전신마취와 기관 삽관 등이 가능하여 폐 개흉과 흉부 내 수술이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뛰어난 수술 실력을 가진 의료진과 종합 병원 급의 병원시설을 구축하여 당시 최선의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환경을 구축하였던 것입니다. 독일의료단은 한국에서 종합병원 급의 병원을 유지하면서 수많은 활동을 해왔고 250개의 병상을 유지하면서 1954년 4월부터 1959년 3월까지 부산에서 운영되었습니다. 이 병원은 내과, 외과, 치과, 산부인과, 방사선과, 약국 등이 운영되었으며,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 치료하는데 열과 성을 다했을 뿐 아니라 전쟁을 통한 환자뿐 아니라 가난한 부산시민들과 피란민들도 무료로 진료를 했습니다. 최종적으로 1959년 병원 문을 닫을 때까지 입원환자는 22,516명이었고, 외래환자는 282,468명이 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습니다. 개원 후 이듬해 서독 적십자 병원은 1955년 6월 말부터 약 2개월 과정으로 한국 의사의 재훈련을 위한 실습을 한다는 소식을 알렸고 21명의 한국 의사에게 진료, 진단, 수술 등의 임상훈련을 쌓게 했습니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 이 한국 의사들은 당시 최신 기술을 익히고 경험을 쌓아서 독일 의사를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성과가 있었다고합니다. 또한 3년 과정의 간호학교를 병설해 무료로 운영해 나가면서 60여 명의 간호사를 배출해 냈습니다. 후베르 원장을 비롯하여 당시 독일병원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강의를 했고, 한국인 의사였던 김근호도 해부학 강의를 한 것으로 알려져있고 당시 이들을 지켜본 루이제 폰 외르첸 수녀원장은 이 어린 간호사 후보생들이 간호업무를 시작할 때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기술을 빨리 터득하고 곧 숙련되기 시작했다고 회고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