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의 유엔참전국 미국
선정 근거 : 한국도착일 1950. 6. 12.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유엔참전국 22개국에서 195만7733명이 참전했습니다. 참전용사들의 용기와 활약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하였습니다. 유엔평화기념관은 뉴스1과 함께 2023년 정전 협정 70주년을 기념하며 ‘이달의 유엔참전국’ 연재를 통해 유엔참전국과 참전용사의 활약상을 조명하고 기억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뉴스1 기사 바로가기 유엔을 통한 일련의 결의안이 채택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미국 수뇌부는 미군의 6·25전쟁 참전을 결정하였습니다. 1950년 6월 25일 트루먼(Harry S. Truman) 대통령은 국가안보회의에서 “북한의 남침과 유사한 사건이 제2차 세계대전을 유발하였듯이 이를 제지하지 않을 경우 제3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될 뿐만 아니라 유엔의 창설원칙마저 위태롭게 될 것이다”라고 밝히며 일련의 군사적 조치를 승인하였습니다.
그 시작으로 극동사령부는 6월 26일 해군과 공군을 동원하기 시작하여 한국에서 거주하는 비전투 미국인들을 일본으로 철수시켰고 6·25전쟁 개입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6·25전쟁 발발 초기인 6월 27일 참전하여 7월 5일 죽미령에서 전투를 시작으로 1953년 7월 정전협정까지 약 10여 일간의 물리적인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전투와 작전에 참여하였습니다.
미군은 한국에서 지리적으로 최근거리에 있는 극동군 예하 주일미군부터 시작하여 점차 미 본토와 해외기지의 육·해·공군을 투입하여 한국을 지원하였는데 특히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 따르면 전체 유엔군 중 미군의 비율은 지상군의 50.3%, 해군은 85.9%, 공군은 93.4%를 차지할 정도로 절대적이었습니다. 미국의 파견 인원은 점점 증가되었고 전투 병력을 포함하여 기타 다양한 파병 인원까지 합치면 총 1,789,000명이 6·25전쟁을 위해 참전하였습니다.
주요 전투로는 미군의 첫 전투인 오산전투를 시작으로 대전전투·진주전투·영산전투·낙동강방어선전투·인천상륙작전·서울탈환작전·군우리전투·장진호전투·지평리전투 등 곳곳에서 유엔군의 전투를 이끌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이 이끈 유엔군은 완벽한 통일에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6·25전쟁을 참전을 결정하면서 ‘전쟁 이전 상태로의 회복’이란 목표를 달성하였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유엔군의 선두에 서서 용기와 희생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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