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의 유엔참전국 호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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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유○평 | 작성일 | 2023-10-01 | 조회수 | 438 |
2023년 10월 이달의 참전국 호주 선정 기준 : 1950. 10. 5. 최초전투일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유엔참전국 22개국에서 195만7733명이 참전했습니다. 참전용사들의 용기와 활약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하였습니다. 유엔평화기념관은 뉴스1과 함께 2023년 정전 협정 70주년을 기념하며 ‘이달의 유엔참전국’ 연재를 통해 유엔참전국과 참전용사의 활약상을 조명하고 기억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1950년 6월 27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한국에 대한 군사원조’안이 결의되자 호주 정부는 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며 대규모 부대보다 소규모일지라도 조속한 참전이 몇 배 더 바람직할 것이라는 멘지 총리의 결정으로 즉각적인 병력을 파견하였습니다. 6월 30일 영연방 극동해군사령부에 파견된 2척의 구축함을 미 극동해군사령부에 파견한데 이어 7월 1일 제77전투비행대대를 미 극동공군사령부로 급파하였고 호주 의회 또한 이러한 정부의 조치를 만장일치로 승인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호주 구축함 바탄(Bataan)호와 프리깃함 숄헤븐(Shoalhaven)호는 정박지인 홍콩을 떠나 오키나와로 향하였고, 다음날 일본 이와쿠니(Iwakuni) 기지에 주둔 중인 제77전투비행대대(No. 77 RAAF Squadron)가 미 제5공군에 배속되어 작전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정부와 유엔으로부터 지상군 파병을 요청받은 호주 정부는 7월 26일 원칙적으로 이를 수락한 사실을 발표하였고 호주는 유엔 참전국 중에서 세 번째로 전투부대를 파병한 전투지원국이 되었으며, 육·해·공군 모두를 한국에 파견하게되었습니다. 호주 정부는 900명 규모의 1개 보병대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하고 8월 8일부터 지원병을 모집하는 한편, 일본에서 점령군 임무를 수행하던 제76보병대대 소속 지원병들과 본국에서 보충한 일부 병력으로 제3대대를 편성하여 조기에 파견하였습니다. 9월 17일 마침내 선발대가 부산에 도착한데 이어 9월 27일 그린(C.H.Green) 중령 인솔하에 960명의 제3대대가 제1진으로 부산에 상륙하였고, 영연방 제27여단에 배속되었습니다. 호주군 제3대대는 영연방 제27여단과 함께 유엔군의 일원으로 북진작전에 참가하여 10월 10일 개성 북동쪽 화장산에서 북한군과 첫 전투를 실시하였고, 10월 17일 사리원 전투에서는 패주하는 북한군 약 2,000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이후 호주군 제3대대는 영유리 전투, 박천 전투, 가평 전투 등을 수행하며 뛰어난 전투능력을 과시하였습니다. 호주 해군은 개전 초기 한국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미국인 소개 선박과 일본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군수물자 수송선단 엄호임무를 수행하였으며 전쟁기간 동안에는 1척의 항공모함을 포함한 총 9척의 각종 함정을 파견하여 해상초계, 해상봉쇄, 해안포격, 유격대 상륙작전 지원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호주 공군 제77전투비행대대는 유엔군 수송기와 폭격기 엄호비행, 38도선 이북에 대한 초계임무, 공산군측 항공기와의 공중전, 지상군에 대한 근접항공지원, 항공폭격 등을 수행하였습니다. 호주공군은 제77전투비행대대 이외에 제36수송편대, 제91혼성비행단, 제391기지대대, 제491정비대대, 제30통신부대, 제30수송부대 등이 참전하였습니다. 앞서 호주가 참전 당시 수상이 밝힌 바와 같이 “우리의 참전 결정은 결코 유엔헌장의 규정에 얽매여서가 아니라 그 정신을 존중하기 때문이다.”라는 연설에서 호주는 국제 평화를 추구하고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6·25전쟁에 참전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호주는 참전 이후 미국과 영국을 연결하는 동맹 관계와 공동목표를 발전시켜나갔으며, 한국과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 등 공동의 가치를 바탕으로 정치, 외교, 경제 등 제반 분야에서 긴밀하고 실질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