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의 유엔참전국 스웨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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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유○평 | 작성일 | 2023-09-01 | 조회수 | 989 |
선정 근거 : 한국도착 1950. 9. 23.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유엔참전국 22개국에서 195만7733명이 참전했습니다. 참전용사들의 용기와 활약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하였습니다. 유엔평화기념관은 뉴스1과 함께 2023년 정전 협정 70주년을 기념하며 ‘이달의 유엔참전국’ 연재를 통해 유엔참전국과 참전용사의 활약상을 조명하고 기억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스웨덴 정부는 6·25전쟁 발발과 함께 유엔의 원조 요청이 있었을 때, 유엔 사무총장에게 한국의 통합사령부(Unified Command in Korea)에 전투 병력 파병은 불가능하며 대신에 스웨덴이 인력과 비용을 부담하는 야전병원을 파견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스웨덴 정부는 8월 10일 야전병원단 파견 결의안이 의회를 통과하자 스웨덴 적십자사에 위임하여 파견 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의사, 간호사, 지원 요원 등을 모집하여 176명이 최종 선발되었고, 병원장으로 그루트 대령이 임명되어 공식적인 스웨덴 적십자병원(The Swedish red Cross Hostital: SRCH)이 구성되었습니다. 이렇게 구성된 스웨덴 적십자병원은 1950년 8월 24일 스톡홀름에서 출발하여 9월 23일 부산에 도착하였고 첫 진료는 병원으로 개조된 부산상업고등학교 본관에서 시작되어 25일 저녁 첫날에만 68명의 유엔군 환자를 치료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치료는 ‘한국에서 미군이 아닌 첫 번째 의료부대의 개원과 치료’로서 의미를 가질뿐만 아니라 본격적으로 부산 내 의료지원 활동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처음 스웨덴 정부가 스웨덴 적십자병원을 파견했을 때는 야전병원의 역할을 생각했지만, 당시 전쟁 상황의 지속적인 변화에 따라 유엔사령부의 요청으로 후송병원의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10월 초가 되자 한국군 의무행정 파견대까지 배속되며 내과·외과·소아과·치과·안과·방사선과와 수술실·연구실·조제실 등 400개 병상 규모와 각종 병원시설이 구축되었습니다. 스웨덴 적십자병원은 1950년 9월부터 1957년 4월 철수할 때까지 6년 6개월 동안 참전함으로써 의료지원부대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한국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참전 초기에는 유엔군과 한국군 전상자는 물론이고 유격대·노무자 등 다양한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한계에 몰릴 정도로 의료지원을 하였지만 1951년 후반기로 넘어가면서 전선이 소강상태로 바뀌어 이때부터 적십자병원은 유엔군 전상자의 치료와 함께 민간인들을 진료하는데에도 크게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스웨덴 적십자사에서는 효율적인 적십자병원 운용을 위해 최신 의료장비와 의약품 공급을 계속하였으며, 의료진들은 6개월의 복무기간을 넘어 보통 1~2년 이상 장기근무에 지원하며 의료활동에 열의를 더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조인된 후 스웨덴 적십자병원은 부산스웨덴병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전상자와 피란민은 물론 극빈자들을 무료로 치료하였습니다. 스웨덴 적십자사가 한국의 재건을 지원하기 위해 의료지원 및 민간구호업무에 참여할 것을 결정함으로서 1954년 말부터는 완전한 민간인 치료 병원으로 재편되기도 하였습니다. 스웨덴 적십자병원은 한국에서 철수할 때까지 한국 의료진이 맡기 어려운 중환자 치료를 도맡아서 하는 등 맡은 바 임무를 다하였고 한국 의료수준을 높이는데 크게 노력하였습니다. 철수 후에도 스웨덴 정부는 덴마크, 노르웨이 정부와 공동 노력을 더하여 유엔한국재건단과 함께 1958년 서울에 의료센터(국립의료원의 전신)을 설립하고 선진 의료기술을 한국 의료진에게 전수하여 의학발전에 크게 공헌하기도 하였습니다. |